광개토왕비 조작 논쟁에 종지부?

미디어 보기 2006. 5. 10. 19:50
광개토왕비 조작 논쟁에 종지부?


역갤 블로그의 글이 올블에 링크되어 상당히 주목받은 듯 합니다.

뭐 대략 그 기사를 살펴보면.....
1883년 일본 육군 참모본부의 사카와 카게노부가 갖게 된 광개토대왕비의 탁본의 진위여부를 놓고 논란이 되어왔었는데 1881년 탁본된 것이 중국에서 발견되었으며, 이것은 1883년 탁본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어서 더이상 논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사입니다.


그런데.... 위의 두 탁본(왼쪽이 1881년 본, 오른쪽이 1883년 본)을 가만히 살펴보면 좀 이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원본을 놓고 베껴쓴 것마냥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죠.
왼쪽 위의 바다해(海)자만 좋고 보더라도 삼수변의 점이 찍힌 위치뿐만 아니라 글자의 각도나 모양들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비석이 울퉁불퉁하여 찍을때마다 약간씩 달라진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납득할 수준은 아닙니다.

역갤 블로그에 붙은 댓글을 살펴보면 다르다고 한 분에게 어떤 분께서 안과에 가 보라고 말씀하신 익명의 x가 계시는데. 제가 볼때는 안과 말씀하신 분이 안과에 가셔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기사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들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몇 년전 이 기사가 국내에서도 약간 다뤄졌었는데, 당시에 글자체가 다른 문제도 있었지만 1881년이란 년도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등등도 불명확한 것으로 알려졌었습니다.

이런 기사 소식을 이렇게 시간이 지난 다음에 올리는 것은..... 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지요. ^^;

추가 : 2006.05.09
신문기사를 살펴보니 위의 두 이미지는 실제 탁본은 아니고, 탁본자가 비문을 해석해서 비슷하게 옮겨놓은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새로 발견된 탁본을 살펴보면 묽은 묵으로 두들겨서 떴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되고 있는 몇몇 글자들의 경우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뒤에 일본인들이 뜬 탁본에는 뚜렷하게 보이는 점을 생각하고, 탁본방법을 생각하면 대부분의 탁본들에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알기 힘듭니다. ^^;;;;

결국 위의 기사는 낚시기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결론이지요.
논란은 전혀 변화없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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